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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인상-고궁(故宫)/자금성(紫禁城)

명·청 500년을 통치한 24명 황제의 거처'그는 또 수많은 뜰을 건너가야 한다. 그 많은 뜰을 다 지났다 해도 새로운 계단을 만나게 되고, 다시 뜰을 지나고 또 다시 다른 궁전을 만나게 된다. 끝없이 몇 백 년, 몇 천 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황제가 파견한 사절은 결코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권력의 고독을 다룬 프란츠 카프카의 <황제의 메시지>에 나오는 ‘그곳’은 바로 자금성이다. 8백 여 개의 건축물과 9천 여 개의 방이 있는 곳. 10m에 이르는 높은 성벽과 50m 너비의 거대한 해자로 에워 싸인 그곳은 카프카의 말 그대로 드넓은 뜰과 수많은 건물로 지어져 빠져 나올 수 없는 미로다.

자금성은 명·청 때 500여 년간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다.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제는 권좌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1406년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만리장성 이후 중국 최대의 역사라 불리는 자금성 쌓기에 나섰다. 이후 14년간 100만 명의 인부가 이 공사에 동원됐다. 사용된 건축 자재의 양도 상상을 초월해 벽돌 1억만 개와 기와 2억만 개가 사용됐다. 기둥에 쓰일 나무는 사천지방에서 조달된 것으로 운송에만 4년이 걸렸다. 전각의 받침대와 부조에 쓰인 돌은 5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날랐다. 돌은 하나의 무게가 200톤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당시 부역자들은 겨울철 길에 물을 뿌려 빙판을 만든 뒤 돌들을 날랐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자금성에는 황제 일가를 위해서 9천 명의 시녀와 1천 명의 내시도 함께 살았다.

하늘의 아들, 황제를 위한 자색

자금성을 가득 메운 자색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빛깔이며, 동시에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상징한다. 북극성은 하늘의 궁전이 있는 곳. 하늘의 아들 즉 천자인 황제가 사는 궁전 역시 그 하늘을 상징하는 자색으로 지었다. 남과 북의 긴 축 위에 놓인 자금성의 건축물들은 모두 남향이다. 이는 남쪽의 양기를 받고 북쪽의 바람과 음기로부터 황궁을 보호하려는 의도다.

성 내부는 정무 처리를 위한 구역(외조)과 황제의 주거 구역(내정)으로 크게 나뉜다. 남쪽에 있는 외조는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에서 시작된다. 북쪽 방향으로 태화문·태화전·중화전·보화전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동서에 문화전·무영전 등의 전각(殿閣)이 있다. 높이 35m, 면적 2377㎡의 웅장한 태화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당나라 때에는 주요 의식이 치러지던 곳이다. 태화전의 앞마당에는 병사 9만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은 뜰이 있다. 외조의 북쪽으로 내정이 펼쳐진다. 내정의 주요 건축물로는 건청궁·교태전·곤녕궁 등이 있다.

자금성은 철통 같은 보안으로 황제를 지켰다. 바닥에는 걸을 때 경쾌한 발소리를 내는 특별한 벽돌이 갈려 있다. 이 벽돌의 효과는 음향만은 아니었다. 땅 밑에서 뚫고 올라올지 모를 침입자를 막기 위해 40여 장의 벽돌을 겹쳐 쌓았다. 성 내에는 후원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전혀 없다. 암살자가 나무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자의 거처지만 어쩌면 금으로 둘러 싸인 감옥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금성은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과거의 궁전이라는 뜻에서 공식 명칭은 ‘고궁’이 되었다. 왕조는 사라졌지만 해마다 600~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자금성은 여전히 중국 문화의 중심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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